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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나 없이도 잘 굴러가는 세상

걸어갈 수 있는 길만을 고집하는 나로서는 강 건너 뉴저지에 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고집을 꾹 누르고 ‘보고 싶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뉴저지’라며 전날 밤부터 나를 다독였다.     바지를 엉덩이 밑으로 입은 남자가 서브웨이 안으로 비척비척 들어왔다.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나를 노려본다. 나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딴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차이니즈 어쩌고저쩌고. 코비드불라 불라. 차이나로 돌아가.”   외친다. 재수가 나쁘면 이 남자에게 얻어터져 난 오늘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갈 수도 있다. 두려웠다. 그렇다고 벌떡 일어나 자리를 옮기면 그의 시선을 더 끌어 악화 현상을 만들 수 있다. 그림자처럼 그냥 그대로 숨죽여 앉아 있었다. 주위에 사람들도 꽤 있다. 조금은 안심이지만, 내가 얻어터질 때 저 사람들이 나를 도와준다는 보장은 없다. 다들 카메라를 들이대기나 할 것이다.   한동안 나를 향해 욕하던 그가 나에게 가까이 오려는지 엉거주춤 일어났다.   “엄마, 위험한 느낌이 들면 도망가요. 엄마는 작고 약해 보여 타깃이 되기 쉬워요. 무조건 뛰어서 안전한 곳으로 가야 해요.”     평소에 아이들의 잔소리가 나를 벌떡 일으켰다. 그에게서 떨어진 곳으로 급히 갔다. 그는 자리에 도로 앉더니 차이니즈 어쩌고저쩌고 멈추지 않고 쉰목소리 떠들었다. 주위 사람들은 모른 척한다. 오히려  마치 무대 위에 올려진 그와 나를 보는 듯 즐기는 분위기다. 지하철이 멈췄다. 후다닥 빠져나왔다.     만약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서 늙은 내가 사라진다면 남편은 젊은 여자 만나 흥미진진한 삶을 살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낡은 차 폐차시키고 새 차로 갈아탄 느낌이겠지? 아이들도 잠시 힘들다가 시간이 흐르면 나를 잊을 것이다.       인간의 앞날은 알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 오늘 갈 수도 있다. 운이 좋으면 집으로 돌아가 내 자리를 지킬 것이고 재수가 없으면 내 자리를 누군가 차지할 수 있다. 내 사후의 일을 누가 어떻게 결정해도 죽은 나는 어찌할 수 없다. 그리고 언제 그런 여자가 존재했었냐며 세상은 잘 굴러갈 것이다. 나 없이도.   누군가는 이 여자 우울증 걸렸나 하겠지만, 나는 현실을 말하고 있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여자 우울증 악화 현상 주위 사람들

2023-05-05

[글마당] 남의 제사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천정이 높고 넓은 창고에서 사람들이 둘러앉아 조각 작품을 만들고 있다. 선생님이 퇴근하면서 나보고 뒷정리하라고 했다. 주위 사람들과 잡담하느라 뒷정리가 더뎌지는 와중에 옆방에서 친구가 도와달란다. 친구를 도와주고 돌아오니 전등불을 꺼 놓고 모두 떠나고 없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퍼붓는다. 전등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번갯불로 더듬으며 버릴 것을 쓰레기통에 넣으며 정리한다. 일 진행이 느려서 마음이 조급하다.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은 무서움이 엄습했다.     평상시 내 주위환경과 너무 다르다. 비정상이다.     ‘이건 내가 처한 현실 세계가 아니야.’     눈을 떴다. 불안하거나 복잡한 일상을 만들지 않고 피해 가려고 애쓰는 나로서는 꿈이라는 것을 꿈속에서 알아차렸다. 너무 좋아도 내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꿈속에서 직감적으로 안다. ‘이건 꿈이야. 이렇게 좋을 수가! 깨지 말고 좀 더. 조금만 더’ 하는 순간, 그야말로 깨어진 꿈이 된다.     누군들 좋아하련만, 나는 복잡한 것을 질색한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자면서도 꿈이라고 깨닫고 깨어나듯이 현실에서도 가담하지 않는다. 물론 여간해서는 끼어들지도 않지만, 간단한 일이겠지 하고 가담했다가도 뭔가 엉기는 분위기가 되면 발을 뺀다.     간단해야 반복하기 쉽다. 재미까지 보태진다면 더욱더 오래 하며 즐길 수 있다. 한번 시작한 일은 불평불만 없이 죽~ 아주 오랜 기간 재미 붙여서 한다. 간단하기 때문에 신경 쓸 일이 없어서다. 그래서 혼자서 하는 일을 선호한다.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일은 셋만 모이면 패가 갈리듯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다. 물론 리더를 잘 만나면 다행이지만, 아무리 리더가 능력이 있어도 주위에서 초 치는 인간이 있기 마련이다. 비틀기를 즐기는 인간은 앞장서서 시작도 잘하고 일이 잘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이 주도권을 쥐려고 혼란에 빠뜨린다.   복잡한 것을 질색하는 내 성격에 보조라도 하듯 팬데믹 핑계로 사람들을 멀리하며 혼자서 평화로운 삶을 즐겼다. 그런데 바이러스를 감기 정도로 취급하는 요즈음 다시 주위에서 번잡한 일들이 꿈틀대서 그런 개꿈을 꾼 것 같다.     3년이란 격리 기간을 잘 적응했다. 팬데믹 이전으로는 돌아가기는 그리 쉽지 않다. 유튜브나 구글을 통해 각자의 문제나 외로움을 해결하기 쉬운 세상도 한몫한다.     팬데믹이 끝나고 사람들을 만나도 남의 제사에 밤 놓아라. 대추 놓아라 지적질하면서 인간관계를 복잡하게 뒤틀지 않게 오지랖 떨지 말아야지 스스로 다짐한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제사 기간 재미 격리 기간 주위 사람들

2022-10-21

[독자 마당] 경청의 힘

얼마 전 오피니언 글에서 남의 말을 경청하면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지식도 늘어난다는 글을 읽었다. 100퍼센트 공감하는 말이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다 보면 몰랐던 지식을 얻게 된다. 또한 경청하는 자세, 그 자체만으로도 상대에게 호감을 줄 수가 있다.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과 말로 인해 크고 작은 다툼을 해왔다. 그런 다툼을 조용히 되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말로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싸웠던 때를 돌이켜보면 항상 상대와 내가 각자의 말을 많이 하고, 상대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았을 경우다. 반대로 내가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 주거나 상대방이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나의 말을 주로 들었을 경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두 사람 모두 말을 아끼거나 둘 중 한 명이 말을 양보해 많이 하지 않으면 싸움은 생기지 않는다.     매번 대화를 할 때는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듣기만 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렇지만 잘 실행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상대가 말 할 때 잘 듣고 있지만 어느새 내가 주로 말을 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이 경우에 말을 한다고 표현하지만 일방적으로 내가 ‘떠들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이 알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은 내용을 길게 늘어 놓거나 상대방이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을 끝없이 펼치는 사람들이 있다. 듣고 있는 상대방에게는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자기 말을 하고 자기 주장을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자제를 하려고 해도 천성적으로 과묵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쉽지 않다.     매일 아침 결심을 한다. 오늘은 말 하는 날이 아니라 듣는 날이라고. 하지만 퇴근해 집으로 돌아 올 때면 오늘 한 말로 후회를 한다.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참지 못하고 했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에도 결심을 하겠지만  지킬 자신은 없다. 정성일·LA독자 마당 경청 아침 결심 자기 주장 주위 사람들

2022-04-21

[글마당] 나보고 어쩌라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무리가 가까이 다가와 나를 둘러쌓다. 바이러스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안절부절못하다 잠에서 깨어났다. 새벽 2시다. 복식호흡 몇 번 하다가 다시 잠에 빠졌다. 갑자기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떠올랐다. 잠이 또 깼다.     재작년에 96세로 돌아가신 시어머니는 새벽 3시면 잠에서 깨셨다. 늦어도 밤 9시에는 잠자리에 드셨으니 적어도 6시간은 주무셨다. 문제는 본인이 불면증에 시달린다며 늘 불면증약을 달고 다니시며 하소연을 한다는 것이다.   “어머니, 9시에 자서 3시에는 일어났는데 주무실 만큼 주무시지 않았나요?”   “새벽 3시에 일어났는데 어찌 잠을 충분히 잤다는 게냐?”   “그러면 더 늦게 주무시고 늦게 일어나세요.”   “난 9시엔 졸려서 더 늦게는 자지 못한다.”   그러면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나 심심해서 전화했다.”   “TV 보세요. 요즈음 한국 연속극 재미있는 것 많이 하잖아요.”   “난 TV는 재미없다.”   ‘책이나 읽으세요’라고 말하려다 도로 삼켰다. 바쁜 나를 붙잡고 한 이야기 또 하고 또 하셨다. 선인장을 닮은 나는 가시로 콕콕 찌르듯 까칠하게 남편에게 말했다.     “10여 년 넘게 듣는 똑같은 소리 더는 못 듣겠어. 심심한 네 엄마 먼저 전화해서 시원하게 속풀이 해드려.”     “내가 도리도리라도 하며 엄마 심심풀이 땅콩 하라고. 그래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밥하고 빨래뿐이 달리 소일거리가 없는 엄마를 걱정하셨나 봐.”   평생 하던 일을 멈춘 시어머니는 심심하고 지루하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 걸었다. 자식들은 물론이고 주위에 친분 있는 분들에게도 자주 전화하다가 “전화 좀 고만해요”라고 꽥 지르는 소리까지 들으셨다. 시할머니 시집살이, 6·25 전쟁 그리고 집 떠나 평생을 사셨던 시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곱씹으시다가 섭섭함이 복받치면 침대에 돌아누워 벽을 바라보고 훌쩍이셨다. 긴 밤은 무섭고 낮은 지루했던 시어머니는 ‘빨리 죽어야지’를 수시로 내뱉으셨다.     요즈음 컴퓨터를 할 줄 아는 나이 든 분들은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그 정보를 생활에 응용하느라 바쁘다. 아니면 종교에 빠져 성경책을 읽거나 기도하며 바삐 사는 분도 많다. 허위정보 유튜브일 수도 있고 종교의 노예로 현실 도피일 수도 있지만,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주위 사람들은 들볶이지 않는다.     인생에서 만남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만남으로 결정된다.   나는 좋은 부모를 만났다. 그리고 남편도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다. 아이들 또한 운 좋게 잘 만났다. 항상 그들에게 감사한다. 진정으로 감사하다면 심심하다고 외롭다고 그들에게 매달려서는 안 된다. 고독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가족의 시간과 에너지를 축내지 않게 나 자신의 창조적인 삶을 살아야지 다짐한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엄마 심심풀이 시할머니 시집살이 주위 사람들

2022-02-11

[독자 마당] 치매를 막는 ‘웃음’

 친지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건망증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해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더니 건망증이 아니라 치매 초기란다. 그래서 약을 먹기 시작했다는 내용이다. 치매는 시니어들이 기피하는 병 중 하나인데 내 친구가 그렇다 하니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된다.     80이 넘으면 4명 중 하나가 치매라는 통계가 있으니 걱정이 안될 수 없다. 암보다 더 무서운  병이 치매가 아닌가. 아직까지 치매를 고치는 약은 없지만 증상은 늦출 수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어느 날 신문에서 귀한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100세가 넘은 어느 수녀님의 일상에 대한 얘기다. 너무도 정정하고 또렷한 기억들, 젊은 사람에 비해 조금도 손색없던 수녀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궁금했던 의료진들이 뇌를 검색해 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분의 뇌사진은 치매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임을 보여주었다. 이분의 뇌가 이 지경인데 어떻게 그렇게 현명하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수녀님을 늘 부지런했던 분으로 회고한다. 규칙적인 생활과 봉사활동을 하면서 기쁘게 생활하셨던 것이 비결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뇌만 우리의 일생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의 팔다리, 손가락도 기억을 한다. 훈련을 통해 기억된 행동은 머리가 못 따라가도 숙련된 행동으로 일상생활에 나타난다고 한다.     뇌는 바보라 진심으로 웃는지, 가짜로 웃는지 구별 못하고 웃을 때마다 엔도르핀이 솟아난다고 한다. 이 설을 기반으로 웃음치료가 생겼다고 한다. 얼마나 다행인가. 늘 웃으면서 기뻐하며 살 때 치매도 멀찌감치 달아나고 만다.     욕심, 원망, 시비는 다 내려놓고 웃으며 살 때 우리의 인생은 밝아진다. 이것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것이다.  노영자 / 풋힐랜치독자 마당 치매 팔다리 손가락도 욕심 원망 주위 사람들

2021-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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